2010. 4. 18. 08:29
[그냥/괜히]
좀 되긴 했지만..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베란다 앞 나무는 저렇게 울창하게 변해 있었다. 아 여름이구나
지난 주말에는 camera obscura 콘서트에 다녀왔다. 북텍사스대학이 있는 덴튼이라는 동네의 작은 공연장에서 했고, 의외로 인기도 많아서 관객도 거의 꽉꽉 차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보니 일 년 내내 투어를 돌고 있었는데, tracyanne 언니의 특유의 시무룩한 표정이 사실은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무려 인도네시아나 남미까지도 다니는 것 같던데 아마 한국은 안 간듯.
올해는 땡땡이 무늬. 아 피펫츠는 안오나
그러고 나서 화요일에는 pat metheny 공연. 작년에 earth wind and fire가 했던 nokia theatre였는데, 그때 1시간 늦게 갔다가 공연 전반부 놓쳤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정시에 바로 불 꺼지고 장내 방송 나오더니 10분 후에 바로 팻아저씨 나와서 공연 시작. 늦게 왔으면 또 억울할 뻔 했다. 앞으로도 nokia theatre에서 하는 공연 보러 올 때는 미리 도착해야 할 듯.
지금 사는 곳에서 nokia theatre까지는 한 50km 정도 되고, 고속도로 타고 40분에서 1시간 까지 걸리는데, 거기 가는 길에 이런 곳이 있다.
작년에 처음 갔을 때, 네비게이션이 뭔가 복잡하게 안내하길래 어디 잘못됐나 싶었는데, 나중에 지도에서 찾아 보니 이런 식이었다. 북쪽에서 내려와서 동쪽으로 가는 길인 건데, 그냥 우회전 한 번만 하면 되도록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건 무슨 변태 교차로 같은 -_-
팻 멧시니의 2010년 새 앨범은 진작에 사서 듣고 있었는데, 음악 스타일은 여전했던지라 그 앨범이나 공연에 관련된 얘기는 아무 것도 들은 것이 없었고, 그래서 공연장에서 팻아저씨가 아무도 없는 무대에 혼자 나와서 클래식 기타 독주를 시작했을 때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새 앨범은 아무튼 악기가 많이 들어간 곡들이라 혼자는 못 할테니 이따 다른 연주자들이 나오겠지, 하고 있었는데, 클래식 기타로 두 곡 정도를 하고는 피카소 기타로 한 곡. 그러고 나서 뭔가 페달을 밟자 저 뒤에 있던 하이햇에 달려 있는 막대기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박자에 맞춰서 기타로 뭔가 연주를 하고, 그걸 루프로 만들어 틀어 놓고 그 위에 다시 기타로 다른 연주를 얹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로봇이 연주하는 하이햇이 약간 신기했을 뿐, 저건 뭐 내가 집에서 쓰는 루프스테이션하고 같은 거잖아, 라는 생각에 연주가 끝나자 옆 사람한테 그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다른 악기들을 가리고 있던 막이 확 걷히면서 모든 악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연 도중에는 사진촬영 금지라 끝나고 찍었음
여기에는 안 나왔지만 양 옆으로는 피아노와 오르간, 브라스도 있었고, 아무튼 모든 악기가 로봇이 막대기를 움직여서 연주하는 식이다. 심지어 오른쪽에 보이는 기타와 베이스기타까지도. 공연 중간에 팻이 직접 설명을 해 줬는데, 한 25년 전에 혼자 스튜디오에서 놀다가 떠오른 생각을 실제로 구현해 본 것이라고 한다.
- 지금쯤 여러분들은 두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을 거에요. 하나는 "저인간 미친거 아냐?", 그리고 두 번째는 "저 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아이디어 자체는 그렇게 혁신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라면 당연히 엄청난 노가다를 투입했을 거라는 것이 짐작된다. 오케스트라를 혼자 만들어 내는 느낌이고, 새 앨범 제목 "orchestrion"이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같이 보러 간 동료 h는 "이 사람은 뮤지션이야 엔지니어야..." 라고. 기타로 저 악기들을 각기 연주해서 루프를 만들고 그 위에 계속해서 트랙을 중첩하는 걸 보면서 좀 많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이 김승모밴드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