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9. 13:30
[그냥/괜히]
오늘 아침에는 6시에 전화 회의를 들어갔어야 했는데, 어젯밤 오랜만에 동생과 한참 동안 채팅하다가 3시 넘어서 잠이 들었다. 여러 가지로 알람을 맞춰놓고 잤지만 결국 눈뜬 시간은 9시. 사실 5시반에 알람 소리 듣고 깨서 소변 보고 약간 정신을 차릴 뻔 했으나 결국 덜 깬 상태로 다시 누워 버렸다. 유럽과 중국과 미국이 다 깨어 있을 시간에 하기 위해서 이렇게 잡았다는데 중국은 고작 저녁 8시.. 아 진짜 매달 하는건데 다음에는 시간 좀 늦추자고 해야 할 듯.
9시에 깬 것은 전화기에 메일 오는 소리가 들려서였다. 회의 때 나온 얘기들을 정리하는 메일이 아닐까 하고 열어봤는데, sad라는 제목의 그 메일은 친한 동료 S(지난번에 봉고 녹음한 그 S)의 아이가 월요일 아침에 죽어서 오늘 장례식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요일 저녁에 S가 우리집에 와서 한참 놀다 갈 때도 아무 일 없었는데 이럴수가.
마침 이번주가 아이의 첫번째 생일이었다. 미숙아로 너무 일찍 태어나서 몇 달 동안을 인큐베이터에서 살아야 했던 아이는 그래서 일 년에 생일을 두 번 챙기게 되어 있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날 한 번,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날 또 한 번. S는 열 달을 채우지 못한 아기가 못내 걱정스러워서,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날을 진짜 생일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생일에는 금요일날 조촐하게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하자고 했고, 건강해져서 나온 진짜 생일에는 근사하게 파티를 하자고.. 절친한 다른 인도인 친구 S와 K와 나만 초대하는 거라고.
다른 회사 다니면서도 일 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만나서 얘기도 많이 하고 합주도 했는데, 너무나 낯을 가리는 아내와 건강을 주의해야 하는 아이를 나는 아직도 직접 보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 집에 와서 차 한잔 하자고, 이번 주말에 날씨 좋으면 애 안고 아내와 같이 우리집 놀러 오겠다고, 다음 주말에는 definitely 저녁 먹자고 몇 달째 얘기했지만 어쩐지 계속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보게 된 것이다. 하필이면 이런 식으로.
관 속의 아이한테는 차마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었다. S의 아내는 내내 오열하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고, S는 별수없이 옆에서 계속 토닥이고 위로하면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인도 사람과 한국 사람이 대부분인 조문객들은 그걸 보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고만 있었다. 나는 답답해서 밖에 나와 담배를 몇 개 피웠다.
미리 파 놓은 구덩이에 관을 넣고, 생일 선물로 샀을 것이 분명한 장난감들을 같이 넣으면서 S는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처참하게 일그러진 S의 얼굴을 한동안 멍하니 보고 있다가, 식 진행을 도우던 S의 친구 K에게 들고 있던 영정사진과 초라한 봉투를 내밀면서도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이름인 스와라지는 힌두어로 "자치" 또는 "자제"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사회 시간에 스와데시 운동과 함께 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너무 일찍 나와서 오랫동안 인큐베이터에 의지해야 했던 아이가 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결혼도 안한 나한테는 좀 상투적인 얘기로 들리지만 죽은 아이를 가슴에 묻고 얼른 기운 차리고 다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