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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5. 10:26
딴지일보에서 퍼옴.

지난 5월 2일은, 세계적 기업이라고 알려진 삼성전자를 소유한 '그룹을 소유'한 이건희씨에게 고려대학교가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한 날이다. 일군의 고대 학생들이 이 날 수여식장에서 벌인 반대시위에 대한민국 언론들은 지대한 호들갑을 떨었고, 고매하신 보직교수님들은 미안하다며 일괄 사퇴를 하네 마네 기염을 토했더랬다.

이 생쇼의 마무리가 사뭇 독특하다.

또다른 학생 일군이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다며 해당 대학 총학생회에 책임을 묻기에 이른 것이다. 사태가 폭력에 치달은 것을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는 대 총학생회 서명운동을 벌인 <평화고대> 모임이 그들이다. 이들의 서명운동이 급기야 총학 탄핵발의까지 이루어내자 여론은 다시 들썩였다.

학위 수여 반대 시위가 있은 직후 일인시위를 했으며, 뜻 맞는 학우들과 <평화고대> 모임을 만들어 대표로서 총학 탄핵발의를 주도한 이승준씨(3학년, 국문과)를 만났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난 5월 17일이었다.




딴: (5/2 시위에 대해 이승준씨가) 책임을 물은 곳이 총학이잖나. 그런데 총학에서는 우리가 주체가 아니었다고 하고. 또 하나 평화고대의 문제제기는 평화시위의 약속을 주최측이 지키지 않았다는 부분인데, 우선 평화시위는 <다함께 고대> 등 시위 주도 그룹에서 약속을 하고 진행했던 건가?

이: 그렇죠. 다함께나 단대 학생회장들이 그날 이건희씨가 오는데 거기에 대해서 집회를 했으면 좋겠다 하고 총학 측에 협조를 구했구요, 총학측은 그런 취지에 공감해서 허락을 하고, 학생들의 대표니까, 학교측을 상대로.. 학교측에서는 그거를 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왜냐면 학교측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겠죠. 하지만 총학생회가 시위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대표해서 약속을 하는 조건--평화적인 피킷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물리적 충돌 같은 거는 없도록 하겠다 라고 분명히 약속을 하고 시작한 거구요. 실제로도 총학생회 간부들, 부총학생회장이랑 집행위원장 등 책임있는 간부들이 참여를 했었구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죠.

딴: 몸싸움이 있었기 때문에(약속을 지키지 않은거다)?

이: 몸싸움도 있었고 그리고 학교 기물을 파손하거나.. 그리고 그런 것들보다도 가장 인상을 찌푸렸던 거는, 같은 학교의 아르바이트 온 자원봉사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을 상대로, 제지한다고 욕설을 하고, 같은 고대인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거에 대해서 많은 학생들이 그 장면을 보고 실망을 했었구요.

딴: 그러나 그 시위를 총학이 공식적으로 한 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이: (학교측에서) 정확히 징계논의가 되고 있는 학생들이, 총학 회장과 징계논의가 되고 있는 다섯 명. <다함께 고대> 서범진 대표, 경영대, 정대, 사대, 문대 그렇게 4개 단대 회장들. 이 사람들이 그날 사태에 주동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학교 측이 판단해서..

딴: 고대 몇대 총학의 이름으로 이런 시위를 하겠다 이랬던 건 아니었잖나?

이: 그렇죠. 공식적이고 예정된 시위는 아니었죠. 총학측에서도 저희한테나 대자보를 통해서 그런 거를 많이 주장을 했어요. 우리가 직접적으로 앞에 가서 주동을 한 게 아닌데, 왜 도대체 우리를 압박을 하느냐. 그들 입장에서는 압박을 한다고 생각을 했겠죠. 저희도 솔직히 탄핵 발의까지 실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고대 학생들이) 2만 명 가깝습니다. 19,350명. 그 중에서 (발의가) 되려면 10분의 1 이상 연서. 그러니까 2,000명에 육박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탄핵발의 조항을 넣었던 거는, 이런 조항이 없으면, 서명을 만 명 넘게 받아도, 난 사과 못하겠다..

딴: 강제력이 없다..

이: 그렇죠. 뭔가 긴장을 시켜주기 위한 요소로써 두 번째 사안을 넣었던 거고. 서명을 예상 외로 2천 5백 명 가까이, 그것도 자발적으로 와서 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첫째 날부터 학생분들이 많이 와주셔서 호응을 해주셨어요. 이거 탄핵까지는 아니더라도 꼭 사과는 받아야겠다, 이번 일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겠다 생각해서 참여해 주신 분들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이거 총학 반대하는 거냐, 총학 탄핵할 수 있는 거냐 하고 와 주시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처음에는 5.2 사태에 한정해서 서명을 받았던 건데..

고대 학내 구성원들은 이번 38대 총학생회에 대해서 그동안 불만이나 불신이 쌓여왔던 상황이예요. 일단 당선될 때부터 투표율이 저조해서 무효투표가 될 위기에 처했거든요. 그때 선거관리위원장이 지금 집행위원장이자 작년 총학생회장이었던 XXX씨였습니다. 그 사람이 학칙에도 없는 연장투표를 계속 거치면서, 총학생회가 없으면 학생들에게 큰 불이익이 있다.. 그런 이유로 엄밀히 따지면 선거를 중지시키고 다시 하거나 했어야 하는데 강행해서 된 거였거든요.

딴: 서명인 2,500명이면 많은 숫자인건가?

이: 그렇죠. 이번 일에 대해서 고대 학생들이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를 대변해 주는 거죠. 평화고대는 일종의 매개자, 전달자 입장 밖에 안됐거든요. 저희는 힘있는 조직이나 자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저희는 그냥.. 서명운동을 근거로 총학이나 다함께 측에 그걸 들고 찾아가서 서명운동을 이만큼 받았다, 그러니까 이 학생들의 의견을.. 너희 의견이 옳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많은 학생들이 이번 일에 대해서 우려를 표시하고, 어떻게 보면 상처나 피해같은 것에 대해서 너희들의 책임있는 모습을 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저는.. 그게 그렇게 하기 어려운 건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입장을 바꿔서 제가 총학이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다면, 아니 이렇게까지 학생들이 서명 운동을 하기 전에 학내 여론도 알아보고, 파장이 또 워낙 커져서 외부의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된 거에 대해서 수습을 해 보려고 충분히 성의는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현 고대 총학이 생래적으로 지지기반이 약했다는 주장, 그리고 사과가 그렇게도 하기가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는 이승준씨의 생각은 그와 평화고대 모임의 액션에 있어서 주요한 핵심어다.


딴: 그쪽의 입장에서 이승준씨에게 질문을 해 보겠다. 가령 이런 거다. 총학이 공식적으로 참여 독려를 한 것도 아니고, 또 공식선포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재벌총수에게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반대하는 명분에는 찬성한다. 해서 내부 구성원들이 각자의 판단에 따라 참여할 수 있다면 참여해라 할 수는 있잖나. 그런 상태에서 일이 터졌는데, 평화고대에서 총학측에 책임을 묻고 사과를 할 것이며, 재발방지를 하라고 하는 요구를 하는 것은, 어쩌면 수신이 안되야 할 곳에 수신이 되는, 잘못된 우편물이라고 총학은 생각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 저도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총학생회장도 만나고, 집행위원장도 만나고, 다함께 측도 만나고 했었는데, 시각이 달랐어요. 그쪽에서는 시위의 정당성만을 얘기하면서, 우리가 옳았고 사과할 게 없고 재발방지 약속은 더더욱 못하겠다 하는 거였구요. 저희는 시위 정당성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어요. 거기에 대해서는 학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고, 저 개인적으로는 그날 시위가 문제제기의 측면에서는 충분히 할 만했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던 거죠. 서로간의 기본 전제가, 문제를 바라보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들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어제 기자회견하는 시간 전에도 제가 직접 가서 얘기를 했었어요. 그날 오전에 총학쪽에서 반성문 비슷한 글을 썼는데, 그 글에 대해서도 제가, 그게 사과를 한 거냐.. 끝까지 사과 아니었다, 사과할 생각도 없고 재발방지 약속은 더더욱 못하겠다고 저희한테 얘기하고.

총학에서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글에 썼긴 썼는데, 그 반성한다는 게 학내 구성원들의 더 많은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반성한다는 거지, 저희가 문제삼고 있는 시위 과정의 폭력성이라든가 그 시위의 결과가 야기시켰던.. 특히 100주년 기념이라는 것 안에 딱 걸쳤기 때문에 학내 학생들의 감정같은 게 더 격해지는 작용도 했겠지요.

딴: 이건희씨 학위 수여에 대해 어떤 개인적 입장을 갖고 계시나?

이: 학교측이 어떤 이유를 대든 그거는 옳지 못했다고 생각하죠. 예를 들어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준다는 것도, 명예학위이기 때문에 논문을 쓰지 않더라도 학위를 줄 수는 있는 거지만, 경영이나 경제학이 아닌, 철학이라고 하면,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허탈하죠.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느냐면, 백주년기념관 완공식을 백주년 기념일날 몇 시간 전 했어요. 그거를 하는 시기와 거의 근접하게 5월 2일날 수여식을 한다는 거 자체에 대해서, 학문을 돈 주고 사고파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너무 쉬웠기 때문에..

딴: 삼성에서 기부한 돈으로 건물을 하나 지은 거잖나? 건물 완공일날 건물주가 행차를 하셔서 일종의 세러머니를 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이승준씨는 우연적 요소로 보시는 건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표현이 잘 이해가 안되는데.

이: 그거는 학교측이 명백히 잘못 했다고 생각해요. 학교측이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주더라도 몇 달,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줬다면 지금처럼 학생들이 반발하지 않았을 텐데..

딴: 그럼 이승준씨는, 이건희씨 학위 수여가 시기 문제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명예박사 학위를 줘도 상관..

이: 시기 문제도 있구요, 철학이라는 학문의 그런... 전공의 그런 문제도.. 경영철학을 얘기하는 건지.. 그렇게 설명은 하겠지만은, 철학 같은 경우에는... ... 사람에 따라서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에도 쉽게 받아들이기는 좀 어려웠거든요, 처음에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학교측도 잘못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렷한 눈으로 시종일관 기자의 눈을 주시하며 말하던 그가 처음으로 인터벌을 길게 가져간 대목이다. 괜찮은 시기에 철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박사학위를 주는 것이었다면 이건희씨 학위 수여가 무방하다는 의미로 들렸는데..


딴: 모호해서 그러는데, 다시 정리하자면, 이건희 학위 수여는 반대를 확실히 한다는 입장인가?

이: 확실히 반대하구요. 그러니까 학문을 돈으로 사고 파는... 학교측의.. 어떻게 보면 아양. 아양하는 식으로 충분히 비쳐지는 거죠. 그런 거를 어떻게 보면 의도했었던 거구요. 불러다놓고 그냥 감사하다고 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학위를 주고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했던 거죠.

딴: 그렇다면 다함께나 단대조직이 벌였던 시위가 평화시위였다면 이승준씨도 참여할 수 있었다는 건가?

이: 그렇죠. 저는 그날 그런 집회가 있었다는 거를 모르고 있었어요. 그게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게 아니라 급박하게 이루어진 거기 때문에, 그걸 제가 알았다면 호기심 차원에서라도 가서 과연 어떤 광경이었을까, 시위에 참여까지는 못했더라도 호기심에서라도 충분히 갈려고 했었는데, 저는 그날 몰랐었죠. 그게 홍보가 많이 안됐으니까.

딴: 전체 학우를 대상으로 해서는 홍보가 잘 안됐었나?

이: 그렇죠. 총학생회 주최 공식 행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인물을 따로 뿌린다거나 대자보를 붙이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학생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런 성격의 집회였죠.

딴: 그렇다면 시위와 총학과의 관계성은 많이 희석이 되는 거 아닌가?

이: 그 시위의 취지에 공감을 한다 하더라도, 일단은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대표하는 대표성을 띱니다. 항상 학생들의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하거나 행사를 기획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도의적인 책임을(가지고 있다).. 아무리 그 관여한 정도가 적더라도 여기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 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딴: 일종의 간접적 책임과 근원적 책임이 있다는 건가?

이: 예. 적어도 관리 소홀... 일단은 평화적인 시위를 하기로 학교측과 명백히 약속을 하고 집회를 허락받은 거고. 우발적이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거거든요. 학생들과 학교측 관계자들이 가까이 있었고, 이건희씨가 나타났을 때, 실제로 거기서 몇명이 "이건희가 나타났다"고, "잡아라"..

딴: 잡아라? 흐흐흐흐

이: 예, 그런 식으로 해서 몰려들다 보니까 몸싸움이 붙고, 몸이 부딪히다 보니까 서로 과열이 되가지고. 그쪽에서는 이건희씨 보호해서 식장으로 들어가고.

딴: 시위하는 학생들이 '잡아라' 뭐 이런 식의 얘기가 나와서, 이건희씨 측에서 보기에는 학생들이 물리적 타격을 가할 수도 있겠다 느껴졌기 때문에 격화됐다는 말씀인가?

이: 이건희가 나타났다고 하면서 잡아라 그러면서 우르르 모여들면서..

딴: 현장에 없었다고 하셨는데 들은 얘기인가?
이: 들은 얘기요.
딴: 어떤 식으로 들으셨나?
이: 현장에서 아르바이트 했던, 자원봉사 했던 학우가.. 그날 가까이서 봤던 학우의 얘기죠.

딴: 예전 학생운동의 폭력시위라는 걸 기억하고 있던 터라, (그 집회에서) 어느 정도의 폭력성이 있었나 궁금하더라. 자료를 찾아봐도 그렇게 딱히 별다른 폭력은 없던 거 같던데..

이: 예전에 비해서는 심한 폭력이 사용됐다 할 수 없겠죠.

딴: 처음에는 (시위대쪽에서) 피킷이나 가면 같은 거를 들고 나왔었는데, 학교측에서는 학생들을 동원해서 가드를 세웠다고 그러더라.

이: 아, 그거는 그쪽의 주장인데요.

딴: 사진에도 나와있던데. 흰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쫘악..

이: 그 사람들이 럭비부 소속 운동부 학생들이거든요? 원래 어떤 거냐면, 삼성측에서 럭비부에 후원을 해줬대요. 럭비부 감독이 선수들한테, 삼성측 고위 인사들이 많이 오니까 직접 이건희씨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높은 사람들한테 인사를 하라고 대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딴: 티셔츠 입구서?
이: 마크 새겨져 있는.. 럭비부에서 같이 입는 그런 건데, 아무튼 단정하게 입고 인사를 드리려고 했겠죠.

딴: 음.. 그랬던 건가. 그러다가 상황이 돌변하니까 "나가" 그런 건가?(웃음)

이: 학교 관계자가 그러더라구요. 그날 럭비부가 왔던 거는 인사하려고 왔다가 돌발상황이 나타나니까 학교측에서 지원을 요청한 거죠. 더 심하게 사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나서달라 해가지구 된 거라고 얘기 들었어요.

딴: 그 점이 오히려 학생들을 자극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상황을 모르니까.

이: 그렇죠. (시위)학생들은 인사하러 오고 그런 거는 모른 상태에서 건장한 체격의 사람들이 나타나니까.

딴: 학교측은 이미 알고 있었지 않겠나. 예전에 김영삼 전 대통령 사건 때문에 고대 이사장께서 굉장한 비탄에 빠지셨던 전례도 있고(웃음). 이거야 학교 당국과 얘기해야 하는 거고.

예전에 영삼옹이 고대에 강의를 하러 왕림하셨다가 학생들의 저지로 걍 돌아갔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이에 동아일보 전 회장이자 고대 이사장이었던 김병관씨는 사건 후 학교 정문 앞에 만취 상태로 되돌아와, 타고 온 세단 차문을 붙들고 하소연하셨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지..


딴: 다른 얘기로 넘어가서.. 주장 중에 이미지가 실추됐다 하던데 정확히 어떤 의미의 이미지 실추인가?

이: 학생들 일부가 물리적 충돌이라는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했던 건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아, 저 학교 학생들은.." 딱 정확하게 한정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고대 애들은 왜 다 그래.." 성급하게 일반화 해가지구 몇 사람이 잘못한 건데, 전체가 매도되는 거죠.

딴: 어떤 이미지로 매도됐다는 건가?

이: 폭력적인 이미지. 그러니까, 같은 학생들이나 교직원을 상대로 퍼큐를 날리거나 하는 거.. 저는 이해가 안되거든요? 얼마든지 얘기로, 왜 막냐, 왜 우리를 저지하는 거냐 얘기할 수 있는 건데, 그걸 왜 꼭 욕설로 그렇게 해야 됐었나..

딴: 방송에 그런 모습이 나왔었나? 퍼큐 사인 나오고..

이: 철창에 올라가서 흔들면서 발로 차고..

딴: 그때가 어느 상황이었길래 격앙이 됐었나?

이: 이건희씨는 안으로 들어가고 자원봉사 하는 학생들이 셔터문을 내렸어요. 문 내려지고 그 사이에 학생들이 대치하면서, 일부 흥분한 학생들이 셔터를 부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돌파하려는 의지를 너무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다 보니까 발로 차고..

딴: 그 부분이 고대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고대인 전체의 이미지를 부정적이게 작용한다는 건가?

이: 그렇죠. 학생들이 그 부분을 많이 불쾌해 했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날 사태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안 다음에도 무관심했었는데, 나중에 언론에 의해서 그렇게 보도가 되니까 학생들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편집자주:당시 수여식 시간이 방과후)에서 그렇게 비쳐지는 이미지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거 같아요.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날 사태를 언론보도에 의해 알게 됐다는 그의 발언. 이 부분 역시 중요한 대목이다. 실제 대다수가 어땠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적어도 자신부터 그런 경로를 통해 문제의식을 느꼈기에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딴: 구성원들에 따라서는 밖에서 보여지는 고대 이미지에 훼손을 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대편쪽의 입장에서 질문을 드리자면, 만약 신자유주의나 노동철학, 기업경영의 철학에 있어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보자면 이런 것도 있지 않을까? 야, 역시 고대구나. 우리나라에서 이건희 회장을, 누가 그만큼이나 수모를 겪게 하겠나.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고대 이미지 제고가 되지 않았을까?

이: 그걸 통쾌하게 생각하고..

딴: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게 있다. 삼성의 노동정책이나 경영철학을 굉장히 비판하는데, 누군가 뒤에 가서 삼성원서 주고 이거 넣기만 하면 입사된다고 한다면 또 다를 수 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의 부분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그 현실이 다가오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의 철학이 있을 수는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학교에 내가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왔다. 이 상태에서 젊은 학생들이 그에 대한 액션을 취한다는 거에 대해서 나름의 자극을 받고 칭찬을 해줄 사회 구성원도 있다.

이: 예. 거기에 공감하구요. 학생들마다 틀리겠죠. 저희 학교 같은 경우는 매년 4.18 기념 달리기를 할 정도로 지금까지 여러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전통들에 대해서 굉장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죠.

딴: 전임 대통령 면박 준 곳도 고대밖에 없었다.

이: 예. 이건희씨한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고.. 저도 가끔씩 학생들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흥행요소들이 많았겠죠.

딴: 기자회견시 성명서에서 보면, 고대 이미지에 대한 부분이 있는데..
이: 예. 기자분한테도 질문 받았어요. 대체 그 이미지가 뭐냐..

딴: 그게 모호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본다. 단일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 예. 저도 그것 때문에 당황해서 그 자리에서.. 진땀 흘리며 하다가 어떻게 대답은 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느낌을 되짚어 봤을 때, 고대생이면 느낄 수 있었을텐데, 일반인들한테 표현하기가 굉장히 좀.. 예를 들어 4.18날 저희가 달리기 하는 거나, 아님 학교에서 막걸리 마시고 응원하는 거나.. 외부에서 보면 쟤네들 왜 저래 생각하는 그런 건데, 여기 학생들은 그런 거를 직접 해 보면서 가슴으로 느끼고 쌓여 가지고 그런 게..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공유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런 이미지나 명예라든가 자부심이라든지 하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이 외부 사람들한테 왜곡되거나 훼손되는 거에 대해서 강한 반발심리가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하구요. 이번 탄핵발의의 경우, 그동안 미리 기자분들한테나 시간이 없어서 설명을 많이 못했던 건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총학) 당선 때부터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또 그동안에도 수차례 학생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거거든요.

딴: 그러나 그건 사안의 논점을 벗어나는 거 아닌가?

이: 그렇죠. 확대되는 거죠. 그리고 소급되는 건데. 저희는 이번 사안에 한해서 서명을 받았던 거예요. 그런데 학생들은 예전의 그런 것들까지 생각해서 불신 같은 것들이 쌓였고, 거기에 대한 일종의.. 더 이상 맡겨둘 수 없겠다 하는 것들이 강하게 표출된 거 같아요. 웬만해서는 학번 적고 서명까지 쓰라고 하면 학생들 많이 참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총학측 어떤 관계 학우도 굉장히 놀라워 하더라구요. 그렇게 많이 서명 받은 거 보고 놀랐다고.

딴: 그렇다면 이번 탄핵 발의를 지지한 학우들은 지난 5월 2일 사건에 반대한다기 보다는 총학에 반대했던 건가?

이: 그렇죠. 언론의 관심은 이건희나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이나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기업에 고대가 저자세를 보인다던지, 아니면 학생들이 취업을 못할까봐 안달이 나서 저러는 건지.. 이런 요소가 관심을 더 끌기 때문에 그쪽 방향으로 보도를 하는 건데, 저희 학생들이 이런 서명을 받은 것은 삼성이나 이건희씨하고는 연관이 별로.. 외부에서는 이것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만, 학생들은 그간 총학이 했던 여러 가지 잘못된 일들에 (불만이) 쌓인데다가, 5월 2일의 딱 그 일. 그날의 폭력성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는 총학측에서 주장하는 것들..

저 같은 경우에는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면서 (총학측이)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더 이렇게 악화가 된 것은 5월 2일 이후에 총학이 보여준 무책임한 모습들.. 계속 시위의 정당성을 운운하면서,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려는 유연한 자세가 부족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거기에 염증을 느끼고, 아 쟤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그냥 한마디 사과하고 끝내면 다 되는 거 아닌가 하면서, 학생들은 거기에 대해서 쌓여간 거죠.

딴: "아 이거 사과하고 말면 되는 거 아닌가"는 총학에 대한 이승준씨 개인의 생각 아닌가? 총학은 학생자치기구로서 가장 큰 조직이고, 나름의 정치적 위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거고. 그런 상태에서 명백한 잘못이 규명되지 않는다면 사과하기는 힘들지 않나? 나름의 철학과 입장이 손상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이: 저는 보면서 안타까웠던 게, 사과나 잘못에 대한 인정을 하더라도 그것과 관련된 행동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은 아닌데, 그에 대해서 완벽하게.. 모든 게 문제가 없었다는 식의 태도가.. 그쪽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자기 확신이 있었으니까 학생운동이나 학생회 활동을 하겠지만, 일반 학우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이 안가거든요?

이 친구, 조직의 정치성과 그 때문에 비롯되는 역학관계를.. 모른다.


딴: 혹시 총학조직이 오만하다고 느껴졌었나?

이: 그런 생각도.. 전체 학생들이 다 가진다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 학생들보다 의식적으로 더 깨어있고 도덕적으로 상위에 위치해서 학생들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굉장히 거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거든요?

딴: 이승준씨도 그러시나?
이: 예. 저도 그렇구요.

딴: 우월의식이나 가르치려 들거나 이렇다고?

이: 그렇죠. 예를 들어서 총학이나 다함께 측에서는 대자보를 엄청난 사이즈로 거의 매일 바꾸듯이 했어요. 저번 주 같은 경우, 거의 서명전쟁처럼 그쪽도 서명운동 하고, 저희도 하고. 저희는 대자보를 두 번 바꿨어요. 중간에 한 번, 막판에 한 번 붙였던 반면, 그쪽은 거의 실시간으로 물량공세를 했는데, 학생들은 그런 것을 보고 오히려..

딴: 역작용이 났나보다.
이: 그렇죠. 그런 게 식상하다 못해 이젠 지친다..

딴: 그럼 다른 학우들의 눈에 이승준씨의 모습이 총학이라는 골리앗에 맞선 다윗처럼 비춰질 수도 있었겠다.

이: 그런 점 때문에 학생들이... 처음에, 5월 4일날 일인 시위 했다고 언론에 보도되고, 마치 제가 평화고대의 대표처럼--저희들 안에서는 대표가 없지만, 그렇게 보여지는 바람에 학생들은 저에 대해서 부풀린 생각을 갖고, 혼자서 맞섰다.. 혼자 한 게 아닌데. 그런 식으로 처음에 많이 띄워 주시더라구요. 지금은 제가 많이 욕을 먹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지난 주 같은 경우에는 저뿐 아니라 평화고대 싸잡아서 학교 어용이거나 삼성의 사주 받고 하거나..

딴: 아니면 삼성에 너무 들어가고 싶은 학생들이거나?
이: 예, 그런 식이거나.

딴: 그건 어떻게 생각하나?

이: 저는 나중에 취업을 할 생각을 별로 안했기 때문에.. 저는 제 개인 사업을 하거나 하고, 기업에 취직할 생각은 별로 안했거든요.

딴: 오늘 신문 보니까 한나라당이 이번 일을 많이 좋아라 한다던데. 젊은 보수 세력 나왔다고. 그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 개인적으로 제 정치적 의견을 말하자면, 한나라당에 대해서 별로 좋게 생각 안합니다. 아직 젊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보수라고 하면 거부감이 들고.

딴: 자기 자신에 대해 평가하자면 어떤 성향인가?
이: 저는 그냥.. 개인적으로.. 열린우리당.
딴: 좌파는 확실히 아닌 거 같다.

이: 열린우리당이 좌파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잖아요. 중도보수라고 할텐데, 그렇게 치면 저도 약간 우쪽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겠죠. 한나라당이 저희 평화고대를 얘기했다는 거를 보고.. 기분이 좋다고도 할 수 없고, 오히려 앞으로 오해를.. (웃음) 그래서 해산하기를 잘했다.. 안그래도 우파 정치조직으로 비쳐지고 해서. 그쪽(총학측) 대자보를 통해 우파정치조직 등 벼라별 얘기를 다 들어가지고..

딴: 평화고대 모임이 해산했다고 했는데 간단하게 평화고대 결성부터 해산 때까지 설명해 달라.

이: 저희가 원래 학교 자유게시판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그날 많이 격앙되고 흥분된 상태에서 학교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글만 쓸 게 아니라 카페를 개설해서 뭔가 행동하는 거를 보여주자. 일반 학우들이 나서서 얘네들한테 같은 학생이 전면에 나서서 있어야 일종의 견제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생각해서 5월 5일날 모였었고.. 모인 다음에는 이렇게 끝나기에는 사람들이 아쉬웠나봐요. 뭔가 찜찜하고, 마치 화장실 가서 닦고 나오지 않은 듯한 불쾌한 감정이 남아있어서, 우리 안되겠다, 이대로는 못 헤어지겠다, 사과 받자 하는 마음에서 처음에는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 해달라고 찾아가서 얘기했다가 거절당하고. 그 다음부터 저희도 오기가 생겼죠. 무시 당하고.. 저도 가고 다른 사람들도 거절당하면서..

딴: 막 무시당하셨나? (웃음)
이: 자세한 얘기는 못드리지만..

딴: 조금만 해달라.

이: 저 개인의 의견이라고 얘기하더라구요. 저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우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건 너 개인의, 이승준의 의견이고 일반 학우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별로 듣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얘기하고.. 서범준씨 같은 경우도, 우연한 기회에 딱 마주쳐서 얘기하게 된 거고. 제가 만나자고 했을 때도 별로 안만나겠다고, 바쁘다고, 자기.. 그런 일도 있었는데..

일단 저희 모임이 처음 모였던 이유는 5월 2일 사태가 계기가 된 것이니 만큼, 저희가 앞으로 어떻게 사과를 요구하고 안되면 서명운동도 한번 해보자. 서명운동할 때는 그냥 하면 힘이 없으니까 탄핵발의.. 처음으로. 저희 100주년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고..

딴: 그랬다더라.

이: 그래서 이걸 한 번 껴서 압박을 해보자. 일반 학우들이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보고 끝내자 라고 합의를 보고 한시적으로 명확히 시한을 정했죠. 마지막에 공식적인 게 끝나면 그날로 해산을 하자. 더 끌고 가면 학생들한테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우리들도 당장.. 예전에 학생운동을 한 경험자도 있지만 저나 대다수 학생들의 경우에는 이런 경험이 전혀 없다보니까 이걸 더 끌고 나갈 힘이 없죠. 또 각자가 (목적적으로) 추구하는 게 없으니까. 이번 사건에 대해서 사과를 받아보자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모인 모임이었습니다.

실제로 서명운동 기간을 거치면서 학생운동이나 학생회 사람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좀 무서울 정도로... (웃음) 진짜 이거 잘못 하면 괜히 우리가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계란만 깨지는 게 아니라.. 우리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딴: 정치적 관계성에 말려서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나?

이: 그렇죠. 저희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건데, 그런 것들이 나중에 꼬투리가 잡혀서.. 저같은 경우에는 예전에 썼던 글이 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건데 캡쳐가 되어서 폭로가 되고..

딴: 어떤 내용이었길래 폭로라는 표현까지 나오나?

이: 제가 처음에 흥분한 상태에서 썼었거든요. 그날 처음에 흥분한 상태에서 이런 총학생회라면 다 끌어내야 한다 하는 글을 썼었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많이 차분해지고, 평화고대의 대표격이 됐을 때 생각해보니까 내가 저런 글을 왜 썼지 하면서 지워놨던 건데, 그거를 캡쳐 해놨더라구요. 그리고 저희가 서명운동 들어가니까 그 유인물을 뿌리고, 평화고대 리더 이승준의 위선..

딴: (자신의 글에) 욕설도 들어가고?

이: 욕설은 안들어가구요, 총학 이렇게 할거면 끌어내야 한다.. 이렇게 했는데. 그거를 캡쳐해서 총학 게시판이나 학교 자유게시판 이런 데에 올리더라구요. 솔직히 저는 그때 진짜 가슴을 졸였어요. 아, 내가 잘못했다.. 학생들이 되게 많이.. 나는 진짜 학교 못가겠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학생들은 의외로 별로 받아들이지 않더라구요. 저는 밤잠까지 설쳤었는데.. 그리고 얘기하다보면 엿듣기도 하더라구요

딴: 조직적 대결판에 뛰어드셨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 그렇죠. 저는 솔직히 제가 직접 경험하면서 무서웠었어요. 설마 저를 때리거나 협박을 하겠어요? 그러나 이 정도로 나를 압박을 하는 거를 보고 굉장히 그때.. 순수한 사람들만은 아니다 그런 인상을 받았고 더 이상 이런 거를 하기에는 앞으로 어떻게.. 저도 사람인지라 안좋은 얘기는 듣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더 하기에 저도 지쳤고, 다른 학생들도 같이 매도당하는 것도 보기 싫고.. 그래서 해산을 하게 된거죠.

딴: 지금까지 이승준씨가 이런 활동을 한 적이 있나?
이: 예전에 그런 경험은 없었고. 고대 다니기 전에 다니던 학교가 있었어요.
딴: 아, 그럼 원래 01학번이 아니었나?

이: 예. 원래는 99학번이었고 전 학교에서 학내 방송국 같은데서 기자 활동을 했었어요. 취재차 집회에 가고 했었는데 제가 참가를 하지 않고 바라보면서 대단하다 생각을 한 적은 없었죠. 이번처럼 제가 전면에 부각되어서 이렇게 하게 된 것은 아직까지도 저도 믿겨지지가 않죠.

딴: 과에서는 뭐라고 하나? 오빠 사랑해요 하는 후배들도 있나?

이: 제 미니홈피 같은데 보면.. 다 놀라더라구요. 제가 원래 어디 적극적으로 나서고 사람 모으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친한 친구들도, 너 갑자기 왜 그러냐고. 니 공부 열심히 한다고 그러더니 왜 그러냐고 그러더라구요.

딴: 기자회견 보도자료는 직접 각 언론사에 돌린 건가?
이: 제가 취재협조문 형식으로..
딴: 전 학교에서 기자하던 경험으로?

이: (웃음) 아니 그냥.. 왠지 그래야 될 거 같아서. 예전에도 보니까 다 그렇게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사건개요부터.. 그날 결정적으로 엄청난 기자들이 오게 된 게, 네이버 메인에 연합뉴스가 뜨더라구요.

딴: 혹시 학교에서 도와준 거는 아닌가? (웃음)

이: 연합뉴스.. 어떤 분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분들이 다 와가지고..

그는 이틀 뒤인 19일, 탄핵발의로 소집된 전학대회에 참관인 자격으로 참가할 예정이라고 했다. 탄핵안은 기각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예상했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그는 모교 최초의 총학 탄핵 발의라는 선례를 남긴 점, 그리고 이를 통해 향후 총학이 구성원 여론을 보다 중요하게 다루게 될 것을 희망하며 의의를 찾았다. 다음날 예비군 훈련이라서 걱정이라는 그의 말을 끝으로 이너뷰도 끝났다. 비는 어느 새 잦아들었고, 밤도 깊어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평화고대>, 그들 액션의 가장 큰 동인은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빠서' 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속집단이 또라이처럼 비쳐지는 게 각자 기분 나빴다. 그리고 그걸 고대의 이미지 실추라 표현했다. 그런데 바로 그 부분을 질문 받으면 유독 당황해 했다. 이 사건의 의미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배태된다.

먼저, 내 기분이 나빠서..라는 개인적인 동인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정치는 개인에서 출발한다. 개인의 분노, 희망이 집단화되고 거기서 최소공배수가 모색되면서 정치가 탄생한다. 오히려 정치가 지나치게 담론화, 관념화되면서 개인이 실종되어 왔던 것이 문제였다. 개인의 정서에서 출발했다는 자체는 결코 탓할 일이 아니다.

70~80년대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에게 개인의 행복을 주절거리는 것은 사치를 넘어 반동이었다. 조국의 민주화라는 담론이 그들 앞에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런 개인적 사유로는 '뽀대'가 나지 않는다 믿었다. 조국과 민족이라는 거대 서사 없이는 정치를 논할 수 없었다. 그땐 그랬다. 그렇게 개인이 죽었다. 남성중심의 공적 지배구조를 뒤엎기 위해 가장 사적인 것부터 문제제기하고 나섰던 여성운동은, 그래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평화고대>의 액션은, 개인의 분노가 유예 혹은 포기되지 않고 거대한 시스템 자체를 문제제기하는 데까지 나갔다는 점에서, 본질적 의미의 정치가 구현되는 장면이었다. 이게 바로 원시적 의미의 정치다. 이는 IMF 이후 우리 사회에서 기존 권위가 급속한 속도로 해체되고 동시에 인터넷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환경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권력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의 기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지금은 신입사원이 조직의 계통과 위계를 뛰어 넘어 사장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고, 울릉도 사는 고등학생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불만을 토로해 대통령이 직접 듣게 만들 수 있는 시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평화고대>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철저히 시대의 산물이다. 이제, 개인의 정치시대가 드디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당위나 이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적 동인으로도 충분하다 인식하는 세대의 등장으로 인해. 이건 희망이다.

그러나. 희망과 동시에 허망한 것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고대의 '이미지 실추'에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한 것은, 사실 당연한 결과다. 내가 기분이 나쁜 것과 고대 이미지 실추 사이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로직을 가지지 못했으니까. 개인의 정서를 조직의 담론으로 무장할 논리와 수사가 없었으니까.

그들의 분노는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정치는 거기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들 분노의 최소공배수 역시 그냥 개인적인 분노에서 멈추고 말았다. 기분 나쁜 것이 그냥 기분 나쁜 것에 그치고 만 것이다. 학생들 개개인의 대의기관인 총학이란 공적 시스템 자체를 전복시켜야 할만큼의 정치적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건 세계관이 할 일이다.

다시 말해, 그들 액션이 가진 본연의 원시적 정치성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들은 최소한의 이데올로기조차 만들어 내지 못할 만큼 몰정치적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니들이 기분 나쁘다고 총학을 뒤집어야 하나? 하는 아주 간단한 반격에조차 제대로 답할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원래 인기가 없었다.. 기분 나쁜 게 그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시대의 의해 과도하게 학습됐던 70, 80년대의 개인들은, 민주를 열망하는 시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닥 민주적이지 못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근대적 개인을 다룰 줄 몰랐다. 그들은 근대적인 만큼, 동시에 봉건적이고 집단적이었다. 그들을 지금 다시 대학으로 돌려보내도 <평화고대>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고대>의 세대는 이와 정반대다. 그들은, 자신들의 액션이 사실은 매우 정치적이란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할 만큼 정치성이 부재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액션이 가지는 정치, 사회적 맥락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러니다.

거대한 고용주이자 매머드 물주 이건희를 향한 잠재 구직자와 수혜자들의 아양이 빚어낸 호들갑에서 출발한 이 사태는 그렇게, 우리의 20대는 과연 누구인지, 어떤 희망이 있는지, 무엇이 허망한지 그 단면을 드러내며 끝이 났다. 그들은, 우리의 희망인가 아니면 허망한 아이들인가..

당신의 생각은?



딴지편집국
시포(shepoor@ddanzi.com)






이런 평범한 학생한테 탄핵 발의를 당할만큼 지지를 못받는 총학도 불쌍하지만, 한건 해 놓고도 자기가 한 일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는 게 정말 슬프다. 사과해라 못한다 얘기는 대통령 탄핵과 꼭 닮았지만 겨우 이정도밖에 안되는 학생한테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쏟아부었다는 총학도 매우 안쓰럽다. 진짜 학력저하라는게 있는걸까 아니면 그냥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