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 16:49
[그냥/괜히]
애초 계획은 목요일 금요일 이틀 동안 일을 다 끝내고 토요일 일요일은 시애틀 구경 밴쿠버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동계 올림픽은 딱히 궁금하거나 관심 있는 경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잔치 하는 동네 가면 뭐 재미난 구경거리도 많이 있을 것 같아 나름대로 기대하고 있었고, 사무실 사람들도 밴쿠버 간다니까 열라 부러워 했었는데, 물론 올림픽이고 나발이고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내내 가열차게 일하고 반 나절이면 다 본다는 시애틀 시내도 제대로 못 보고, 이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 구경도 좀 하고 놀다 가려고 일부러 비행기를 밤 11:30에 타는 것으로 했는데 공항 와 보니 12:40으로 지연 확정. 도착은 월요일 아침 5시였으나 6시로 늦춰질 거고, 월요일이니까 물론 출근도 해야 하고..
출장 목적은 시애틀 사무실을 좀 더 큰 곳으로 옮기게 되서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이었는데, 19세기에 지어진 건물에 있던 원래 사무실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는 좀 더 최근(1907년-_-)에 지어진 건물에 더 넓은 공간을 빌려서 들어간다고 다들 좋아하고 있었다. 내 임무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일단 전화와 네트워크를 설치하는 것이었는데, 21세기 건물들처럼 손쉽게 꽂기만 하면 되는 건물이 아니라 사다리 타고 천장을 뚫고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케이블링을 하다 보니 갑자기 뭔가 좀 슬퍼져서, 최소한 필요한 한 가닥만 만들어 놓고 나머지는 그냥 무선랜 쓰라고 해 버렸다. 이 정도로도 19세기 건물에서 지낼 때보다는 훨씬 좋아질 텐데 내가 너무 시대를 앞서서 생각하고 있었던 듯.
시애틀 사무실에서 총무 역할도 하고,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에 있는 높은 사람들의 비서 일도 할 사람을 새로 채용했는데, 그 언니의 첫 번째 임무는 물론 일 주일 동안 사무실 환경 만들기라 가구를 보러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말도 잘 통하고 경험도 많은 것 같은데 그 일을 하던 다른 분들 처럼 어쩐지 거만한 느낌이 들지는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름이 서머라 영화 생각이 나서 더 좋았던 것도 있고, 실제로 서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 아직도 그 이름을 부를 때는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마냥 좋을 수만도 없는 것이, 서머를 채용하면서 두 명을 해고했는데, 그 중 한 명은 나와 특별히 친하던 c였다. 지난 주에 생일이 있어서 c는 마침 토요일에 친한 사람들 불러서 동네 술집에서 파티를 할 예정이었는데 금요일에 해고를 당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c는 몇 년 전에 다른 회사를 다닐 때 크리스마스 직전에 구조조정을 당했던 적도 있다. 어쨌든 이번에 c를 내보내는 것은 구조조정이긴 하지만, 같은 날 내보낸 l과 비교해 보면 너무 야박해서 나한테는 별로 서운하게 대한 적도 없는 c의 상사 y가 강렬하게 미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t도 같은 날 나갔는데, t의 경우는 본인 의사로 나가는 것이긴 아니지만 역시 y 때문에 홧김에 그만 둔다고 했던 거라..
t가 나가게 된 과정도 좀 찌질한데 이건 나중에. 아무튼 c나 t나 빨리 좀더 좋은 사람들이 있는 직장을 구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