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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2. 06:04
식 올린 지는 이미 한 달도 넘었지만, 지난 토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신부와 같이 신혼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날짜를 맞추려고 급하게 식을 올리다 보니 신혼여행을 갔다 와서도 나만 혼자 신혼집에 왔다가, 갑자기 한국으로 가게 된 해외 출장 때문에 그 일 주일 전에 타기로 했던 색시의 비행기 스케줄을 변경해서 내 출장 복귀에 맞춰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내 출장은, 비즈니스 트립이라고 해도 그냥 하찮은 엔지니어라 이코노미 클래스 자리였고, 색시는 마일리지를 사용한 보너스 항공권으로 구입하다 보니 비즈니스 클래스 자리를 타게 되었는데, 그래서 웬만하면 내 자리를 업그레이드해서 옆 자리에 타고 오려고 이래저래 알아봤지만 결국 여의치 않았고, 공항 카운터에서도 다시 알아봤지만 35천 마일리지 차감 + 600불을 내면 내 자리를 비즈니스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그거면 소주가 몇병이냐" 하면서 결국 포기했다. 착륙하고 만나자고 해 놓고 비행기를 탔는데, 승무원 언니가 와서는 나보고 그쪽 자리에 가서 만나도 된다길래 좋아라 갔더니 10분만 넘게 앉아 있어도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라고.. "제발 우리 같이 있게 해 주세요" 라고 애원했으나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

하지만 그 외에는 전부 다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입국심사도 수하물도 광속으로 마치고, 집에 오는 도중에 아침을 사먹고 왔는데도 평소보다 1시간은 더 빨리 도착해서 급격히 행복해지면서도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요일 밤에는 드디어, 당장 다시 한국으로 출장을 가라는 메일을 받고 몹시 슬퍼졌고, 그건 오늘 새벽에 다행히도 다른 사람이 가는 것으로 결정되서 잠시 안도했지만, 한국까지는 아니어도 아마 조만간 며칠 동안 국내 출장을 가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 이사도 가야 되고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의 도착 일정도 신경써야 하는 등 뭔가 좀 안정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아, 오늘 새벽에 온 메일 중에는 다른 사람을 한국 출장 보낸다는 것 말고도 하나 더 좋은 소식이 있었는데, 밤새 내린 눈과 비가 얼어서 도로 사정이 악화되어 근처 학교들이 문을 닫는 등 다니기 힘드니 웬만하면 집에서 일하고 사무실은 안 나와도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기온은 18도(섭씨 -8도)에 체감 2도(섭씨 -17도). 좀 풀리면 오후에 사무실 나가 볼까 했지만 이런 경우라면 "앗싸", 이 무더운 텍사스에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이런 날이 있다.

그저께 일요일에는, 집과 바로 연결된 차고가 있고 집안에서 드럼을 칠 수 있으며 가구를 약간 더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조금 알아보러 다녔는데, 생각했던 예산 안쪽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은 지은 지 30년은 됐고 사무실에서도 조금 부담스럽게 먼 데다가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그다지 적절하지 않아서 아무래도 그냥 근처 다른 아파트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최근 대궐 같은 집을 산 전 동료 j의 모기지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월세보다 싸다는 얘기를 듣고서 더욱 좌절. 여기서 대궐 같은 집이라는 건, 운동장 같은 뒷마당, 3대 들어가는 차고, 화장실 6개, 방 10개? 정도로 20개월짜리 아기와 2살짜리 개 한 마리 포함해서 4식구가 사는 집을 말한다.

사실 j네 집도 우리 동네에서는 30분 이상 걸리는 정도로 멀기도 하고, 며칠 동안 색시의 정성이 담긴 밥을 먹다 보니 점심도 집에 와서 먹거나 아니면 가까운 곳에서 같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달에 200불 월세로 해 줄 테니 거기 들어와 살라는 제안도 거절하고 있는 중이고 그냥 근처에 있는 지금 사는 곳보다는 조금 나은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이 아무래도 최선이겠다는 식으로 마음이 굳어지고 있다.


..아직 시차 적응 못한 색시가 자고 있는데 뭔가 음식이라도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