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 08:38
[그냥/괜히]
추수감사절 연휴에 주말 이틀을 붙여서 4일 동안 인디애나에 있는 옛 직장 동료 e를 만나고 왔다. 대충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 거기 있는 동안 하루는 시카고의 이모님 댁에서, 나머지는 e의 집에서 묵기로 하고 내 차를 몰고 같은 사무실에 있는 다른 동료 h와 함께 번갈아 운전하면서 출발.
갈 때는 네비게이션에서 avoid toll을 켰더니 텍사스-오클라호마-아칸소-미주리-일리노이-인디애나로 나오는 안내를 따라갔고, 올 때는 돈 내도 좀더 빨리 가자 싶어서 군데군데 통행료 내는 도로를 탔더니 중간에 아칸소로 빠지지 않았다. 편도 1천 마일을 살짝 넘는 정도의 거리이고, 주유소 영수증으로 대충 계산해 본 결과 250마일에 한 번씩 주유를 했는데 거의 바닥 상태에서 만땅 채우는 데 10갤런 남짓 들어가는 걸 갤런당 2.5불로 치면 달라스에서 사우스벤드의 편도 주유비는 2.5불*10갤런*4=100불. 참고로 달라스에서 시카고까지 편도 항공 요금은 2~3개월 전에 표를 사는 경우 120불 정도까지도 내려가는 정도. 물론 시카고에서 사우스벤드까지는 차로 2시간 정도 더 가야 하고 현지 교통편도 감안을 해야 하지만.. 16시간 운전하는 거리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 아마 앞으로 이 정도 거리를 하루 동안에 가는 짓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을 듯
그나저나 10갤런으로 고속도로 250마일 달린다는 얘기는 고속도로 연비가 25MPG라는 얘기.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0.6km/L가 나오는데 이건 그다지 연비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한국에서 타던 렉스턴에 똑같이 연비 10.6km/L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지만 그땐 기름 더럽게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음) 연비 비교 사이트에 나오는 내 차의 공식 연비는 21(도시)/27(고속도로) MPG.
물론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아니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런 식일 줄은 몰랐던 일이 생겼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밤 12시쯤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바짝 밟았는데 결국 목적지를 90마일쯤 남겨놓고 차에 이상이 생긴 것. 사실 시카고 근처까지 왔을 때 네비게이션이 유료도로를 피하느라 무슨 골목길 같은 곳으로 안내를 했는데, 노면이 상태가 안 좋아서 덜컹거리다 보니 계기판에 "EPC" 라는 불이 들어와서 안 꺼지고, 마침 길이 공사중이라 막혀 있어서 한번 간단히 보기 위해 어느 주택가 골목에 차를 세웠는데 그 뒤로는 엔진을 켠 상태에서 기어 변경이 안 되는 것이었다. EPC는 electronic power control이던가 하는 무슨 엔진 관련 전자장치라고.
당황해서 시카고의 이모님과 형한테 전화도 해 보고, 사우스벤드의 e에게도 전화를 해 보았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보통은 누구라도 달리 도와줄 방법이 없고, 결국 또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긴급 출동을 요청했다. 보험회사랑 전화하는 건 최근 일 년간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는 8자리의 계약 번호를 외우고 있는 지경. 익숙하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견인을 신청했다. 하지만 한참 동안을 기다려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해 보니 이런 빵꾸똥꾸가 내 전화번호를 잘못 적어놓고 있어서 연락이 안 갔다고.. 다시 알려주고 좀더 기다리니까 과연 전화가 왔는데, 근처 견인 업체에는 지금 출동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혹시 근처에 도와줄 만한 사람 있으면 그런 데 가서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연락해서 견인하면 안되겠냐고.. 아무리 추수감사절 당일이고 새벽 1시였다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보험회사인데, 회사 이름도 열라 "진보적"인데 너무했다 싶었지만 그 상황에서 달리 방법은 없었다.
결국 사우스벤드의 e에게 전화를 했고, e는 1.5시간 동안 바짝 밟아서 데리러 왔고, 기어가 안 움직이는 내 차는 그냥 그 주택가 도로에 내버려 두고 e의 차를 타고 또 1.5시간 동안 시속 120마일로 밟아서 사우스벤드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 그러나 인디애나 주는 1시간 빠른 동부 시간대를 쓰는 동네라 거기 시간으로는 새벽 6시.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쓰러지기는 뭐해서 맥주를 조금 마시고 있는데 동이 텄다. 아 이런 식으로 밤 새는 것도 참 얼마만인지.
여행을 다니면 거의 항상 우울한 사건이 터지긴 하지만 그게 끝까지 영향을 미치는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다행히 이번에도 여행 끝날 때 까지는 더 이상 험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견인해 간 차는 뭔가 전자 장치 쪽에 이상이 있었지만 간단한 것이라 공인 딜러샵에서 2시간도 안 되서 수리가 끝났고, 그걸 가지고 시카고 이모님 댁에 가서 여전히 몸둘 바를 모르게 신경 써 주시는 가족들과 제대로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었고, 다음날 e의 집에 와서는 깔끔하고 유쾌하게 맥주와 소주 등등을 마셨고, 그 다음 날에도 역시 별 탈 없이 16시간 동안 운전해서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물론 그렇다고 완벽하게 마무리가 된 건 아니고, 어제부터 다시 출근하면서 보니 어쩐지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고, 오늘 점심 먹으러 나갔다 오는데 보니까 또 다른 무슨 엔진 쪽에 이상이 있다는 뜻의 불이 들어와 있고.. 아무래도 동네 딜러샵에 다시 한 번 가야 할 듯.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경로는 이 정도. 나중에 팔자 좋아지면 좀 천천히 술렁술렁 다녀봐야겠다.
아 참. 추수감사절 바로 전 주에는 핏욘이라는 가수 콘서트에 갔다. 사실 별로 관심 없었는데 사무실 동료 t가 좀 심하게 좋아하면서 추천하길래 들어 보고 나도 좋아하게 됐고, 올해 낸 앨범 중 하나는 스칼렛 조한선과 듀엣을 했는데 그게 또 아주 듣기 좋아서, 콘서트 중에 예고 없이 스칼렛이 슥 출현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콘서트 때는 스칼렛 없이 그냥 혼자 불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