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1. 14:16
[그냥/괜히]
별거 없다고는 하지만 일단 가까운 동네기도 하고 근처에 바닷가도 있고 우주기지로 사용됐던 스페이스센터도 있어서 회사 동료 e, j와 같이 일박이일짜리 여행을 가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잠시 구경하고 갈베스턴이라는 근처 바닷가 도시에서 하룻밤 자고 일요일 저녁때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이건 뭐 가는곳마다 사고가 터져서 어쩌다 나와 같이간 죄밖에 없는 e와 j에게 미안해 죽겠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제일 싼 렌터카 회사에서 제일 싼 모델을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빌리는 것으로 예약. 보험을 가입 안하면 55불.. 이건 뭐 하룻밤 호텔 비용보다도 싸니까 장거리 여행갈 때 다들 자기 차를 가져가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 chevy cobalt라는 넘은 겉모습도 후져 보이고 핸들은 좀 너무 심하게 가벼운 데다가 시속 70마일을 넘어가면 차가 덜덜거리는 등 도무지 정을 줄 곳이 하나도 없는 차였다. 그리고 제일 싼 차다 보니 도어락은 열쇠로 돌려야 하고, 모든 문의 락이 다 수동인 데다가 창문도 당연히 다 손으로 돌려서 여는 구조.
아무튼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중간에 아침도 대충 먹고, US45라는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신나게 달리던 중, 밤을 꼴딱 샜다는 j와 뒷좌석에 편하게 앉는 e가 한참 잘 자고 깰 무렵에 갑자기 반칸 정도 남은 연료게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음 이정도면 다음번 출구에서 잠시 나가서 주유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던 순간 미적거리다가 출구를 하나 놓쳤고, 뭐 그럼 다음번 출구.. 라고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네비게이션으로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유소를 검색했다. 가장 가까운 곳은 현재 위치에서 10마일. 경유지로 설정하고 계속 몰았다.
..10마일 달린 후 나가라는 출구에서 나가서 좌회전을 했는데 U턴해서 다시 20마일을 가라는 네비게이션 -_- 사실 그때는 왜 거기서 다시 20마일을 뒤로 가라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처음 검색했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주유소가 후방 10마일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유턴을 할 수 없으니 10마일 떨어진 다음번 출구에서 돌아야 하고, 10마일 빼기 20마일은 뒤로 10마일. 그러는 동안에 반 칸 남았던 연료는 이미 빨간불 들어와 있고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도 없어서 네비가 말하는 대로 오던 길 20마일을 되돌아갔다. 뒤에서 오는 차들에게 다 추월당하면서도 rpm을 낮춰 운전해서 다행히 중간에 차가 멈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휴스턴 가까운 곳까지 가자 길도 넓어졌지만 차들이 굉장히 난폭해져서 대부분 시속 70마일로 달리면서도 차간거리는 50미터도 안되는 정도로 바짝 붙어서 달리고 있었다. 역시 대도시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잠시 긴장을 푼 순간 앞 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나도 급하게 감속. 다들 이렇게 위험하게 운전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던 순간 제때 감속하지 못한 뒷차가 우리를 받았다.
연식이 20년은 훌쩍 넘었을 것 같은 차에서 내린 좀 많이 없어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아무튼 차들이 많이 다니고 있으니 저쪽 길가로 차를 빼자고 하고는 비상등 켜고 옮기다가, 어리버리하는 사이에 도망가 버렸다. 이건 뭐 당했다기보다 내가 병신인 상황. 다행히 겉보기에 큰 흠집은 없었지만 직경 1cm쯤 되는 구멍이 하나 생겨 버렸다. 렌터카 반납할때는 별로 자세히 보지도 않는데 이정도라면 잘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겠다 싶어서, 사실은 딱히 어찌할 수가 없어서 그냥 잊어버리고 다시 휴스턴으로.
휴스턴 중심가 근처 montrose라는 동네에서 일본라면을 먹었는데 진짜 제대로 된 일본라면이라 대만족. 사실 이번 여행에서 다행히도 먹는것 만큼은 실패하지 않았다. 점심 먹고 대충 근처 거리를 좀 돌아다니려고 했으나 시간 관계상 다음날 다시 오게되면 구경하기로 하고 일단 스페이스센터로. 몬트로스에서 스페이스센터까지는 한 30마일. 이정도면 한 30분 거리..
..라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갈베스턴까지 이어진 US45의 어처구니 없는 정체구간에서 빠져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2.5시간. 7시에 문 닫는 스페이스센터 근처에서 보니 이미 5시. 네비게이션이 가르쳐 주는 길은 도로공사로 막혀 있어서 어쩌다 지나가 버리고, 유턴해서 되돌아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냥 숙소가 있는 갈베스턴 섬까지 갔다. 숙소 체크인 하고 해가 남아있을 때 잠시 바닷가에 가서 약간 걸었다. 숙소는 별로였지만 모듬해물로 먹은 저녁은 아주 좋았고, 렌터카에는 워셔도 와이퍼도 맛이 가서 지저분해진 앞유리를 달고 밤에 운전하기가 매우 애로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예약한 홈페이지에서는 아침을 준다고 나와 있었으나 그런거 없고, 어차피 여기서 주는 아침은 부실할 것으로 생각하고 라면과 전기냄비를 가져왔지만 생각해 보니 젓가락이나 포크, 그릇이 없어서 결국 그냥 말고 -_- 일단 moody garden이라는 곳을 잠시 구경하고 어디 가서 아침을 사먹기로 했다. 무디가든은 뭐 그냥 놀이공원 같은 곳인듯 했고, 아침은 어디 부페 가서 든든하게 먹기로..
아침 먹으러 간 식당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이제는 다들 익숙해져서 내릴 때 문을 잠그고 닫게 되었는데, 나도 내려서 문을 잠근 후 닫고 e와 j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열쇠를 그대로 차에 꽂아 놓은 상태로 몸만 내렸던 것이었다. j는 이미 식당에 들어가고 있고, 이제 막 e가 내리고 있었는데 황급히 잠깐을 외쳤으나 벌써 문은 닫히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보험증서 번호나 전화번호도 다 차 안에 있었지만 아이폰으로 인터넷 접속해서 찾아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익숙하게 전화를 했는데 이건 렌터카라 무상출동은 안되지만 돈 내면 된다고.. 이렇게 또 로드서비스로 63불.
다행히 아침 먹는 동안 출동해서 시간적인 손실은 거의 없었지만, 도대체 이틀 동안 차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몇 번째인지.. 아무튼 스페이스센터 가서 한참 구경하고, 거기서 휴스턴 오는 중간에 있던 그 정체구간에서 또 한시간은 멈춰 있다가 그 뒤로는 무사히 집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계속된 사고와 실수 때문에 다들 짜증나서 차 안 분위기가 매우 싸늘했다는 것이 문제. 아마 다시는 나하고 어디 여행 갈 생각은 할 리가 없겠지..
월요일 아침에 차를 반납했는데, 직경 1cm짜리 그 흠집이 발견됐다.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지만 그런게 통할리가. 그래도 어찌됐든 내 잘못은 아니니 보험회사에서 처리할 거라고 또 보험증서 번호를 적어 줬다. 6월에 갱신해야 되는 보험료는 과연 얼마까지 올라갈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