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출발하던 날, 출근해서 오전근무 한 후 배낭 메고 공항버스 타러 나오다가 지사제를 사러 약국에 들렸었다. 강남 CGV 옆에 있는 곳인데, 한 건물 안에 약국 두 곳이 마주보고 있고, 예전에 한 번 갔을 때는 한쪽에는 남자 약사, 다른 한 쪽에는 여자 약사가 있었고 미니스커트에 그물스타킹을 신고 가운을 입은 굉장한 분이었다. 지사제를 사러 간 두 번째 방문에서는 아쉽게도 그물스타킹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우시고.. 약 달라고 했더니 알약과 함께 뭔가 생약성분의 가루약을 두 봉지 같이 주는 것이었다. 사실 귀찮아서 가루약은 됐다고 했는데 굳이 한 봉지를 그냥 쥐어주면서 이렇게 말하셨다.
"이건 내가 정말 주고 싶어서 주는 거에요"
알약과 같이 먹는 거지만 가벼운 정도라면 그냥 그거 한봉지만 먹어도 놀랍게 낫는다고..
그리고 지금은 맥그로드 간지. 달라이라마와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작은 마을인데, 여행 10일째에 드디어 설사라마가 오셨다. 어째 참 오래간다 싶었는데 결국.. 물론 언니가 준 가루약을 제일 먼저 먹었고, 10알 들어 있는 알약이 이제 2알 남았는데 아직도 똥이 진정이 안됨
그래도 동네는 인도의 다른 곳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인심도 좋아서 매우 편하게 다니고 있는 중. 어제는 티벳 불교의 3인자인 까르마빠라마를 만나서 뭔가 빨간 끈을 받아 왔고, 오늘은 운 좋게도 달라이라마의 설법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예쁜 동네들도 다녔고, 절벽으로 달리는 버스의 스릴도 느꼈고, '수퍼스트롱비어'라는 맥주를 마시고 얘기도 많이 하고..
어디서든 뭐든지 먹을 수 있다던 회사 동료 K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어 아무튼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여기서 5년 전에도 성업중이던 '도깨비식당'에 데려갔다. 고봉의 밥공기와 김치찌개 냄비, 반찬을 싹싹 긁어서 다 먹고 "역시 한국음식"이라던 K를 보면서 많이 미안해졌다. 이양반 속으로는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따라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여행은 막바지고 오늘 밤 버스로 델리로 돌아갈 예정. 한 12~13시간쯤 걸린다는 것 같고, 아침에 델리 도착하면 대충 아무데나 체크인 하고 뇌물쇼핑 약간, 저녁때는 영화나 한편 보고 간단히 맥주 한잔, 그리고 다음날은 콜카타로. 콜카타에서는 하룻밤만 자고 방콕으로, 방콕에서도 하룻밤만 자고 한국으로..
항상 여행 나올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다니고 있는데, 다음 번 여행은 진짜로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날을 정해놓지 않고 떠나고 싶다. 그때는 티벳으로, 네팔로, 라닥으로, 위구르로, 카라코람으로.. 아 물론 김태희가 김 매는 우즈벡이나 전지현이 미역 너는 발트3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