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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31. 13:20
오늘은 10월 30일. 아침 일찍 비행기 타고 달라스 공항 내린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오후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오후에 뜬금없이 사무실 동료 m이 와서 말을 걸길래 한참 잡담을 했다. 영국 출신의 술을 좋아하는 m은 나와 마찬가지로 L비자로 왔는데 비자 만료는 내년 여름이지만 동네 바에 다니다 만난 언니와 내년 봄에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결혼해서 영주권 생기면 좀 있다가 다른 동네로 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영주권 얘기를 듣고 내 비자 기한을 생각하다 보니 딱 일 년 됐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뭔가 한잔 할 빌미가 생겼는데, 마침 또 술 좋아하는 러시아 출신 d가 슥 와서는 주말에 별일 없으면 너희집에서 한잔 하자고. 토요일에는 오전에 뭔가 작업이 있지만 다행히 제때 끝나면 오후에 음식 좀 해서 저녁 먹고 술 마시고 놀면 되겠다 싶어서, 오늘 저녁 먹고 장을 보러 갈까 아니면 내일 일 끝내고 갈까를 고민하면서 일단 일찍 퇴근을 했다.

집까지 오늘 1마일 남짓 거리를 운전해서 오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차가 평소보다 많이 덜컹거리고 있고 음악이 켜져 있는데도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나고, 음 타이어 빵꾸났군, 생각하면서 집 앞에 차를 대고는 보니까 이건 빵꾸 정도가 아니라 거의 폭발해 있었다. 소리도 못 들었는데 언제 이렇게 된 건지.


일단 이상태로 카센터까지 가기에는 위험하기보다 배가 고파서 -_- 일단 저녁 먹고 나와서 임시타이어로 바꿔 끼우기를 시도했다. 훗 미국 와서 직접 타이어 교체하는 건 세 번째. 이미 베테랑 다 됐으니 후딱 교체하고 나면, 생각해 보니 카센터는 어차피 저녁때는 안하니까 그러면 내일 사무실 가서 작업하고 나서 오후에 갈까 아니면 일요일에 갈까 하면서 차체를 약간 들어올리다가 보니 뭔가 낯설게 생긴 나사가 박혀 있다. (사진에 보이는 폭스바겐 마크 주변의 검은 원 다섯 개)

쭈그리고 앉아서 자세히 보니 육각렌치 구멍인데 차에 있던 타이어 교체장비 중에는 그런거 없고, 이상하다 싶어서 집에 들어가서 육각렌치를 가져와서 돌려보니 아주 약간 차이로 헛돌고 있고.. 혹시 다른 차들은 어떻게 생겼나 보면 다들 큼직한 너트 모양으로 박혀 있고. 젠장 내가 가진것보다 아주 조금 큰 육각렌치를 어디서 구할 수 없을까 하고 옆집도 벨 눌러 봤으나 아저씨 안계시고. 친한 사람들 중에 바쁘지 않을 만한 사람을 생각하다가 역시 아직 혼자 사는 러시아인 d에게 전화를 했다. 밥 먹고 온다길래 좀 기다리는 동안 이미 해는 져서 캄캄해지고, 마침내 도착한 d의 공구함에도 여기 딱 맞는 육각렌치는 없어서, d의 차를 타고 월마트에 사러 갔다. 싼 건 안 맞을 것 같고, 15불 짜리 육각렌치 풀셋을 사 가지고 왔는데, 그 많은 렌치 중에 맞는 것이 한 개도 없어서 짜증내며 확 비튼 순간, 저 검은 부분이 확 빠졌다. 저 검은 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된 덮개였을 뿐, 그 밑에는 다른 차에 달려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너트 모양 나사머리가 보이고 -_- 그런데 이상하게도 5개 중 하나는 너트 머리가 아니라 무슨 별 모양으로 생긴 구멍이 있었는데, 그넘을 빼낼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설명하는 d, 이건 타이어 도둑을 방지하기 위한 특수 나사고 보통 타이어 교체 장비에 들어 있는 거라고.. 시밤 이건 중고차고 내 장비에는 그런 거 없단 말이다

그럼 혹시 모르니 다시 월마트든 어디든, 타이어 교체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라면 그걸 풀 수 있는 장비가 있을지도 몰라, 하면서 다시 월마트에 들어가려다가 잘못 지나쳐서, 그 옆에 홈디포에 가서 그런 툴이 있는지 입구에서 물어봤다. 단어를 모르니 타이어를 휠에 고정시키는 데 쓰는 나사를 풀어야 되는데 뭔가 별 모양으로 특이하게 생겼다고 했는데 용케 알아듣고 친절히 설명해 주는 직원. 다행히 어눌한 러시아식 영어가 아니라 무척 알아듣기 쉬웠다. "그건 차마다 다 다르게 생긴 거라 차 살 때 따라오는 거고 그거 잃어버리면 공임 주고 통째로 그 락을 뽑아내고 다시 박아 넣어야 하지롱"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d는, 타이어 교체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만능열쇠 같은게 있을 거라고, 잠시 빌려서 쓰고 돌려준다고 해 보자고..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것이 참 고마웠지만 물론 월마트 카센터는 문 닫았고, 그 맞은편 타이어 가게도 당연히 닫았고.. 월마트에서 뭔가 윤활유 같은 걸 발견한 d는, 이걸 바르면 나사가 좀 느슨해지니까 지금 발라놓고 나면 내일 아침쯤에는 손으로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_-

별 수 없이 그거라도 시도해 보자 하고 사 가지고 와서 뿌리고, d가 일자 드라이버를 가지고 와서 구멍에 넣어서 열심히 맞춰 보는 동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트렁크 밑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을지도.. 허탈하게도 조수석 앞 서랍에 들어 있는 문제의 "lug wrench". 물론 정확히 딱 들어맞았고 드디어 터진 타이어를 떼내고 임시 타이어를 끼웠다. 3시간 소요. 미국 이주 일주년 기념 삽질인듯

d한테, 오늘 일주년 기념으로 타이어가 터진 거라고 얘기했더니, 아직 러시아에 있는 자기 마누라는 며칠 전에 웬 넘이 차 창문을 깨 버렸고 그 상태로 겨울 대비용 스노우 타이어를 끼우러 카센터에 갔는데 정비공이 초보라 타이어 빼내다 세 개째에서 문제의 그 lug nut을 망가뜨린 다음 네 개째에서는 아예 타이어를 터뜨렸다고. 타이어 하나 빵꾸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 듣고 보니 좀 민망스럽긴 했다. 그런데 이 친구와 앞으로 훨씬 더 많이 친해질 것 같다. 뭔가 아주 강한 메탈의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