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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14. 18:46

여행사 후기 게시판에 올린 글이 아까워 여기도 올림. 후기 쓰면 100% 준다는 선물 받으려고 쓰는 거 아님. 그나저나 이제 새벽 4시가 다되가는데. 그래 어차피 다음주에 또 한국 가는데 미리 시차 적응해 두지 뭐 -_-


작년 12월 25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그날 저녁 비행기로 출발해서 4박 6일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서 여러 가지로 자세히 알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냥 노매드 상품을 조금 보다가 무작정 전화를 했습니다. 하니문 상품도 워낙 많아서 다 보지는 못하고, 구독하던 노매드 RSS에서 작년엔가 본 보라카이 직항 얘기가 생각이 나서 처음에는 그 얘기를 했더니 담당자께서 거긴 하니문보다는 그냥 좀 연령대가 낮은 분들이 저렴하게 가는 곳이라며 요즘 신혼여행으로 제일 좋은 곳은 발리라고..

네. 그래서 그냥 발리 주세요, 하고는 3박5일이라길래 좀 짧은듯하여 4박6일로 즉석에서 결정했고, 추천해 주시는 대로 리조빌, 까르띠까+로얄피타마하로 하려고 했으나 최성수기라 객실이 다 차서 그랜드하얏+아이시스 각 2박씩으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처음 가 보는 패키지 여행이지만 어차피 처음으로 신부랑 뒹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인 것인 만큼 어디라도 상관 없었죠.

그래서 일정표를 받고서도 별로 자세히 보지도 않았고 발리 여행에 대해 따로 알아본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까 여기 안내 페이지에 나온 것과는 일정이 살짝 달라요. 항공편이 저녁 출발이라 그런 것 같은데, 풀빌라를 먼저 갔다가 리조트를 가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저희 경우는 리조트에 먼저 체크인해서 2박을 하고 풀빌라로 옮겼습니다. 아무래도 풀빌라 숙박비가 더 비싸니까, 새벽에 도착해서는 덜 비싼 리조트에서 일박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설명을 들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빌라를 먼저 가는 것이 나았을 것 같아요. 너무 아무 생각 없이 갔던 제 책임도 있지만, 저는 막연하게 바닷가에서 해수욕도 하고, 해변을 걷다가 제트스키도 한번 타고.. 뭐 이런 걸 생각했는데, 리조트에서 이틀 있는 동안에는 뭔가 일정표에 있는 관광 프로그램을 가느라 결국 바닷가 물놀이는 전혀 못 하게 됐거든요. 아무리 풀빌라가 남아 있다고는 해도, 리조트도 좋은 곳이었는데 거기선 잠만 잔 것 말고는 특별히 한 것이 없어요. 심지어 식사도 거기선 조식부페만 먹고 점심 저녁은 일정상 그냥 밖에서 먹을 수밖에 없었죠. 물론 밖에서 먹은 식사가 나빴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리조트가 좀 아깝더군요. 정작 발리 해변에서 수영복도 한번 못 입은 것은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습니다.

리조트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빌라가 별로 안 좋았기 때문이에요. 건물은 참 멋지게 지어져 있고 경치도 좋고 시설도 좋았는데, 개장한 지 얼마 안 되서라고 생각하기에는 럭셔리 풀빌라에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좀 많이 보였습니다. 리조트 일정을 마치고 저녁때 빌라에 들어갔는데 체크인 할 때 (전일 빌라 휴식 일정인) 다음날의 식사 메뉴를 결정하게 되어 있더군요. 저희가 고른 것은 아마 미국식과 현지식의 아침이었는데, 솔직히 좀 부실하고 볼품 없는데다가 양도 적어서, 설마 한식은 좀 낫겠지 싶어서 다음날 아침은 한식으로 골랐어요. 육개장이랑 뭔가 찌개였는데 그건 좀 많이 짜더군요. 한국에서 이름난 한식집에서 먹는 것 같은 식사를 바란 건 아니지만 동네 분식집보다는 있어 보여야 할 것 같은데, 양 적은 건 마찬가지고, 현지 직원들은 여러 가지로 많이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지만 뭔가 기본적인 것이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사실 저는 이렇게 휴양지로 이름난 곳을 여행해 본 것이 처음이라, 다른 리조트 또는 풀빌라에서는 어떤 수준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행의 컨셉이 "럭셔리"인 것을 감안해 보면-일단 풀빌라에서만큼은-식사의 수준도 이보다는 많이 높아야 하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때 갔던 울티모 식당이 자리가 없어서 20분 이상 서서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좋았던 이유는 역시 음식 맛과 종업원들의 숙련된 태도 같은 것 때문이었을 거에요.

로맨틱 캔들라잇 디너로는 선택이 불가능한 메뉴로 스테이크와 랍스터가 나왔는데, 여기 상품 소개에도 나온 짐바란 씨푸드 석식이 차라리 나았다는 느낌이 드는 랍스터 요리와, 어느 부위의 고기인지도 미리 설명받지 못한 스테이크는 참 질기더군요. 와인도, 저는 쥐뿔 모르긴 하지만 어떤 종류라고 말이라도 해 주셨더라면 좀 있어 보였을 텐데. 스테이크는 그래도 익히는 정도를 미리 물어보시긴 했는데 미디엄 레어라고 몇 번을 얘기하도록 알아듣지 못하시더군요. (혹시 해서 덧붙이는데, 한국 분이었습니다) 우기라서 그날 하루종일 비가 오고 을씨년스럽게 쌀쌀해서 풀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것 때문에 음식마저 그렇게 느껴진 거라고 위안하기도 힘든 정도로, 럭셔리한 시설과는 걸맞지 않은 수준이었어요.

그렇다고 짐바란 씨푸드 석식이 좋았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그건 그것대로 그 유명한 석양이라도 보였다면 괜찮았을 지도 모르지만, 촛불도 켤 수 없는 강풍에 묵묵히 식사를 끝내고 나니 비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아수라장이 되는 식이었죠. 저희는 포함사항이덨언 음료수 대신 추가요금을 내기로 하고 맥주를 시켰는데, 그 소란통에 맥주값을 받아간 사람이 팁으로 치기에는 조금 많은 거스름돈을-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돌려주지 않은 채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식당 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음식 맛보다는 분위기 때문에 유명한 곳인데 날씨가 도와 주지를 않더군요. 여긴 원래 이런 곳이니 어쩔 수 없었던 거지만서도, 현지 한인 가이드님이 이날 석식을 고르시면서는 저희한테 의견을 묻지 않으시더군요. 음식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거길 골라주신 건 아마 석양이라든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겠지만, 날씨를 감안해서 다른 식당으로 안내해 주셨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 그 한인 가이드님은, 한국 단체 여행객들이 가는 곳은 가급적 피해서 소개해 주신다는 뭔가 자부심 가득한 말씀을 하셨는데요, 한국 단체는 안 보이는 대신 중국 단체 여행객들이 오는 곳들이더군요. 돼지고기로 인기있는 현지 식당이라는 곳은 뭔가 중국 사람들이 잔뜩 와서 먹고 가는 곳이었고, 발마사지를 받은 chinese dragon reflexology에서는 저한테 아예 중국어로 말을 걸어 오더군요.

발마사지가 아프기만 했고 빌라에서의 스파가 그저 부끄럽기만 했던 건 제가 그 쪽으로 그다지 경험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날 받은 "발리에서 제일 오래된 전통 지압 마사지"를 받기 전까지는요. 추가 요금을 냈지만 뭔가 불을 붙이는 귀 청소도 신기했고, 마사지도 그 전날까지 했던 것과는 달리 온몸이 시원해지고 피로도 풀리는 느낌이었거든요. 마사지는 원래 그런 것이어야 할 텐데, 물론 빌라에서는 마사지보다 스파 위주였다고 하지만 글쎄요..

마지막 날에는 어쨌든 선물 쇼핑을 해야 해서 한인 가이드님이 추천하는 폴로샵에 갔는데, 이게 현지 공장에서 만드는 정품이라고는 하는데, 거기서 보니까 물건이 그리 많지도 않고, 색깔도 좀 칙칙한 느낌이고, 아예 한인 점원이 따라 다니면서 설명을 해 주는데 살짝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그런 걸 사러 갔으니 왕창 사긴 했는데, 가격도 그리 싼 것도 아니고 질이 썩 좋지도 않은 느낌이라 역시 실망했어요. 커피 공장에도 가서 커피도 좀 샀는데, 집에 가져와서 마셔 보니까 어쩐지 묘하게 구린 느낌이고.. -_-

여태까지 맘에 안 들었던 부분만 썼는데, 쓰고 보니 이건 여행사 망하라는 얘기처럼 보이는 정도네요. 그런 의도는 아니고요, 이제 반대로 좋았던 것들을 써 보겠습니다. 첫째로는 현지인 가이드님이에요. 현지어로 "둘째"라는 뜻이라는 "마데"라고 소개하셔서 그게 본명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일정표를 다시 보니 "수리안또"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이분 정말 헌신적으로 착하십니다. 한국어도 제법 능통하시고, 어쩐지 블랑카가 생각나서 약간 안쓰럽긴 했지만 이분한테는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어요. 같이 찍은 사진 올려주면 이분 인사고과 올라간다고 하니 사진도 첨부합니다. 마지막 날 출국장을 통과하고 나서도 안 보일 때까지 계속 지켜보면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 모습도 참으로 감동적이었지요.

그리고 래프팅은, 저는 한국에서 자주 했지만 아직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신부는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배고프면 뭐든 맛있는 거겠지만, 래프팅 끝나고 나무 그늘에서 바나나 잎 그릇에 부페식으로 퍼 먹은 점심도 참 좋았고요, 래프팅 노잡이 아저씨도 아주 유쾌한 분이었어요. 이날은 비가 안와서, 반바지 입고 래프팅 하는 잠시 동안 허벅지가 빨갛게 타 버려서 나중에 좀 쓰렸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죠.

첫째 날 저녁때 필수일정으로 들어있던 "나이트 클럽 투어"는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서, 그런 거 대신 라이브 재즈바 같은 곳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한인 가이드님이 찾아내서 마데 아저씨가 데려다 주신 곳은 3인조 재즈 밴드가 팻 멧시니 스타일의 연주를 제대로 하는 정말로 괜찮은 곳이었어요. 연주는 아주 훌륭했고, 칵테일도 꽤 괜찮아서 만족했습니다. 그날 TV에서 하던 축구 A매치 때문에 아무도 연주에 집중하지 않았던, 심지어 밴드조차 곁눈질로 축구 보면서 연주했던 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요.

아, 저녁을 먹은 곳 중에 뭔가 "숨은 맛집"이라면서 보내주신 곳이 있었는데, 개인 여행자들이 다니면서 먹음직한 분위기와 음식이었고 깔끔하게 훌륭했습니다. 그날 점심때 먹은 좀더 저렴한 느낌의 현지인 대상 식당도 신기하고도 먹을만 했고요. 출장 아니면 배낭여행만 다니다 보니 저한테는 이런 식당들이 훨씬 편하게 느껴지네요. 위에서 쓴 "울티모" 식당도 유럽이나 호주에서 오는 개인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서 실속이 있었던 거겠죠.

그리고 다른 여행사에서 하는 저렴한 패키지로 다녀온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면 새벽부터 밤중까지 끌려 다니며 쇼핑을 강요당하는 지겹고 흔한 여행과는 일단 시작부터 격이 달랐으니 어쩌면 저는 배부른 불평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모든 분이 제가 다 황송할 정도로 너무 친절하셨고, 뭔가 강요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물론 빌라에서의 허술함은 친절함과는 별개로 쳐야 하겠지만서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음식: 개인 여행자 대상의 현지식 또는 유럽식 식당은 만족, 빌라 음식은 깍두기만 만족

일정: 래프팅 만족

가이드: 현지인 가이드 대만족

숙소: 리조트 만족. 빌라 시설은 만족

마사지: "발리에서 제일 오래된 전통 지압 마사지"는 만족

쇼핑: 불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신부랑 결혼하고 처음 가는 여행인데 싫을 리가 없잖아요? 서비스가 아무리 허접해도, 음식이 아무리 맛이 없어도 색시가 옆에 있으면 다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겁니다. 물론 색시도 옆에 서방이 있어서 그 모든 저열함을 다 초월해 버린 거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음에 또 발리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아마 항공권과 첫날 밤 숙소만 예약해 놓고 떠날 것 같습니다. 하긴 발리 아니라 다른 동네 갈 때도 그러겠지만서도..

 

 


참, 사실 저 먹는 거 가지고 그렇게 까탈스럽고 까칠한 사람 아니에요.